[기고] 어머님께 고하는 말씀
상태바
[기고] 어머님께 고하는 말씀
  • 이도균 기자
  • 승인 2022.04.03 1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2년 2월 15일 어머님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날입니다. 큰 아들인 저를 나으신지 2만 3499일 만에 눈을 감으셨고, 그 이틀뒤인 오늘(2022. 02. 15.) 이승을 떠나십니다.

6남매를 두셨지만 오래 전 딸 하나를 가슴에 묻으시고 우리 5남매를 온몸으로 비바람 막아내시며 지극 정성으로 키우셨습니다. 고맙고 죄송합니다.

타고난 운명인지 외할아버지의 외할머니 큰 딸로 태어나셔서 할아버지 할머니 큰 며느리로 한 삶을 사셨습니다. 큰 딸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큰며느리는 비켜갈 수도 있었을텐데...,

힘든 나날이지만 배를 곯아야하는 형편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텅 비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못난 자식이고 잔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말만 큰아들이지 큰아들 노릇이라고는 한순간도 하지 못한 불효자식은 여쭈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막연한 짐작은 세월과 함께 사그라져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젖어 지내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님,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뭐라고 사죄를 해야 용서하실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마땅히 꽃상여로 모셔야 하지만 세태가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정성뿐입니다. 생전에 동생들한테 “나는 그 뜨거운 불에 안 들어갈끼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말씀도 등지고 말았습니다.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무슨 염치로 용서를 들먹이겠습니까? 나무라시고 꾸짖으시고 회초리를 드십시오. 눈물이 앞을 가려...,

‘뜨거운 불’을 싫어하셔서인지 남들보다 일찍 불을 벗어나십디다. 그러나 어머님은 온데간데 없고 차마 눈으로 마주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어머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하얀 한지에 한 줌 재로 싸여 우리 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온기는 남아 있었지만 동네까지 왔을 때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자식들, 손자ㆍ손녀들, 사위, 조카들, 시누이들과 함께 거실 골목길을, 어머님은 앞서시고, 느릿느릿 걸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땅을 딛는지 구름을 밟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님 손길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는 큰방에 들어섰는데도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십디다. 그러니 울음은 통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말씀은 없으셨지만 다 알고 계셨지요? 한 말씀하이소

아버님과 함께 아담한 자리를 마련하여 모셨습니다. 편안하셔야 할텐데 하는 염려뿐입니다. 편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막내 가게에서 우리 5남매 내외와 손자, 손녀들, 손서까지 앉아 혼자서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내렸습니다. 밤이 그렇지 않습니까? 어둠이천지를 덮으니 눈에 드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됩니다. 혼자되면 생각이 많아지지요.

어머님을 보내드린 오늘은, 내일보다 수 많은 어제들로 머릿속이 차고 넘칩니다. 비오는 날이면 김이 술술 피어오르는 빵떡으로 우리 오누이들 입을 즐겁게 해 주셨지요. 천지가 얼어붙은 겨울이면 팥을 듬뿍 넣어 빼때기줄을 맛나게 끓여 우리들 속을 녹여주셨습니다. 그때 누가 더 먹겠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등짝을 맞는 놈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은 아픔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사 압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이 바꿔고 세월이 쌓이면서 어머니의 희망과 기대는 자식들 몫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 몫을 얼마나 했는지, 조금이라도 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86년도 더 되는 세월을 사셨고, 방어산을 넘어와 보내 세월이 65년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엇하나 마음놓고 마음대로 해보신 게 있습니까? “한 말씀 해보이소”라고 이제사 말씀드리니 이런 불효막급이 또 어디 있을까요? 등짝을 맞아도 싸고 종아리 피멍이 들어도 싸고 쌉니다.

어머님께서 뜨거운 불 속을 헤메고 계실 때 동생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른 데서는 들을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거기에 무슨 말을 얹으면 폭발할 것 같아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나오면 슬쩍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피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도와주겠지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ㆍ할머니ㆍ아버지ㆍ어머니 뒤로 피하고 숨어서 시간만 보내면 되었던 비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튼튼한 울타리이고 바람막이가 되어주셨던 할아버지ㆍ할머니ㆍ아버지ㆍ어머니는 계시지 않습니다. 눈물이 쏟아집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라고 좀 일러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이 나이 되도록 이러고 있으니 퍽 부끄럽습니다. 어리광이라 생각하시고 빙긋이 웃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몇 번인가 어머님 속마음을 엿들은적이 있습니다.

이웃 아지매들과 나누는 말씀 가운데, 큰아들은 어렵다라고 하십디다. 그러나 어머님이 어려웠습니다 속마을을 내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철이 들고도 수십 년인데 어머님으로부터 무슨 요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있다면 요 몇 년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신 것 뿐입니다. 몸이 아프신건 말씀하셨지만 마음 편치 않으신 건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몸이 아픈 세월에 비해 마음 편치않으신 세월이 더 길었는데도 가슴 깊이 고이고이 간직하고 숨기셨으니, 숨기고 숨기고 하시다가 정신까지 숨기고 본인 얼굴도 잊고 자식들 얼굴까지 모르셨습니다. 어떤 때는 일부러 모르는 체하시는 게 아닌가 싶었던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은 알아보시니 말입니다. 그렇게 널뛰기를 하시다가 도리원에 가신 뒤에는 윤석이도 몰라 보시니...

빛은 어디에 있는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머님, 이제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입니다. 우리 5남매는 이제 ‘어머니’라는 기둥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그러나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새로운 기둥을 마련하겠습니다. 어머님이 물려주신 기둥 다섯 개를 묶어 굵은 기둥 하나로 만들겠습니다. 그 굵은 기둥으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어머님 아버님 할머님 할아버님까지 염려 놓으시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모티서 노제를 모시고 동네 아지매들께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박실아지매 창고 앞에서 어머님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신산아지매, 박실아지매, 소실아지매, 중촌아지매, 대평아지매, 월곡아지매! 수십년 얼굴을 마주하고 어깨를 나란히하며 함께 나눈 정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신산아지매와 박실아지매는 어머님과 쌓은 정을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적십니다. 고맙고도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그 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님과 함께한 2만 3499일을 되돌아보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머님 깊은 속을 샅샅이 헤아리지 못한 아쉬움만 남아 있습니다. 어머님, 남아 있는 우리 5남매를 보살펴주십사고 말씀드릴 염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머님을 힘들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5남매 각자가 어머님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애써 노력하겠습니다.

엄중하게 지켜봐주십시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십시오.

아버님과 손 맞잡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간곡히 빕니다.

 

                                                                                                                        진주시 상대동 이영균

 


주요기사